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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 작품 후반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괜찮으신 분들만 읽어주세요.

 

 

 

 

 

 

 

 

 

 

 

"할로윈에는 죽었던 사람들이 돌아온대."

"에무, 그거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야?"

 

에무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누구를 이야기하는 줄 알겠다는 듯 입가를 매만졌다. 잠시 생각하고 있다는 제스처, 누군가에게 옮은 버릇이었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과는 다르게 글쎄, 라는 답을 듣자 잔뜩 시무룩해진 채 가샤트를 꺼내어 만져보았다. 잘각잘각 소리를 내며 에무의 눈치를 보다가 안돼겠지? 라고 물음을 던져보았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그도 눈치채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던진 물음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당연히, 안돼. 라는 대답이 들려왔지만. 어쩐지 아쉬운 감정은 별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그라파이트가 사용하던 버그바이저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찾아 낼 수 없었다. 부숴진걸까. 막연한 위화감이었지만, 버그바이저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선 별 다른 행동을 할 순 없었다. 그와 지내던 폐허를 걷고, 걷고, 또 걸었다. 해가 질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하자 에무가 주었던 핸드폰에서 문자가 도착했다.

 

'돌아와. CR사람들이랑 같이 파티하자.'

'알았어. 곧 갈게.'

 

버그스터인 나라던가 뽀삐, 겐무, 레이저라면 굳이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이동해서 직접 전하면 됐지만 에무라던가, 브레이브, 스나이프, 니코 같은 경우엔 그럴 수 없으니까. 그들과도 소통하기 위해 에무가 전해준 물건이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폐허의 계단에 앉아 바라보았다. 언제나, 너는 나를 혼자두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바라보는 노을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언젠가 얻었던 케이크 모형을 계단 앞에 두곤 입자 형태로 변하곤 사라졌다.

***

할로윈 파티는 상당히 정신 없었다. CR 천장, 찬장에는 잭 오 랜턴이 가득했고 함께 할로윈 케이크를 먹기도 했다. CR 주변이 온통 주황색, 검은색으로 가득찼고, 겐무때문도 있겠지만 할로윈 복장으로 다들 떠들썩해졌다. 이유 중에는 처음 먹어보는 알코올, 즉 술 때문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원래부터 버그스터인 나, 그리고 뽀삐에겐 효과는 없었으나 에무와 여러가지로 연결되어있는 자신은 조금 달랐다. 취하다-, 라는 느낌은 겐무, 레이저에게 종종 들었지만 막상 이렇게 취한다는 느낌이 드니 상당히 묘했다. 몽롱하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서 짜증이 날 줄 알았지만, 기분만큼은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묘하게 슬퍼졌다.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느낌이다. 니코가 골라준 마녀의 복장을 입은 채로 에무의 볼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가 잠시 다녀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는 입자화 하여 잠시 사라졌다.

 

혹시 모르지 않나, 그 미신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만 적용되는게 아닐 수도 있으니. 미신이 아니라 전설이라면.

 

취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옮겨 확인 한 것은, 기대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쓸쓸한 폐허에 잭 오 랜턴을 두고, 안에 양초를 넣고, 케이크에 불을 붙였던 성냥갑으로 양초에도 불을 붙여주었다. 나름의 할로윈의 마법을 부리는 듯 주변을 그렇게 채워갔다. 마녀의상을 입은 상태여서 알코올 때문일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칵.

 

"...?"

모든 생각이 멈추고 설마, 라는 생각만 스쳐지나갔다. 서둘러 소리가 난 기둥의 뒤를 보자 남아있는 건 빈 캔 뿐이었다. 누가 여기에 버리고 간 것일까. 가끔, 갈 곳 없는 인간들이 이 곳에서 자거나, 먹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잔뜩 신경질적으로 빈 캔을 발로 차버렸다. 멀리 날아가는 듯 하다가 벽에 탕, 하고 부딪힌 캔은 어디론가 데구륵, 굴러갔다. 크게 부풀었던 가슴은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탈싹, 주저 앉으며 몸을 기둥에 기댔다. 쭈그려앉아 고개를 그 사이에 푹 박아 넣고는 훌쩍였다.

 

"보고, 싶어. 보고싶어... ... 그라파이트."

 

이렇게 중얼거려도 바라는 그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속이 시큰시큰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취기도, 기분도, 그렇게 서서히 가라앉아버렸다. 다시 한 번 캔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으나, 이번엔 고개도 들지 않고 미동도 없었다. 또 바람이겠지.

 

"파라드. 먹을 수 없는 케이크를 두면 어떡해?"

"... ...어?"

 

붉어진 눈으로 소리가 난 곳을 앉은 상태로 올려다보았다. 상냥하게 쓰다듬는 손길이 없었다면 분명 환청이라고, 환영이라고. 그렇게 생각 했을 것이다. 어안벙벙한 눈으로 그를 멀뚱멀뚱하게 바라보자 그라파이트는 뻘쭘해진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밤이 짧아. 라고 중얼거리는 그라파이트의 말을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다급히 확인하자 자정이 되기까지, 할로윈이 끝날 때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왜이리 늦었어. 이렇게 늦으면 함께 놀 수도 없잖아."

"오는 중에 길을 잃었다... 라고 하면 믿을건가?"

 

이미 확 깨어버린 취기 때문에 뒤늦게 밤바람이 생각보다 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찬바람에 눈을 꾸욱 감자, 그라파이트가 자신의 겉옷을 어깨에 걸쳐주었다. 실체가 있고, 자신의 볼을 쓰다듬어주는 그라파이트의 따스한 손길이 진짜라고 일러주는 것 같았다. 믿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마녀 복장의 자신을 바라보는 그라파이트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마법이라도 쓸 수 있게 됐나보지. 라고 중얼거렸다. 아슬아슬하게, 그라파이트를 안고 울고 싶었다. 네가 없는 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했으며, 어떤 감정으로 이 곳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줄줄 늘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직, 하는 노이즈에 심장이 쿵 내려앉아 버렸다. 정말 자정이 되면 가버리는거야?

 

"그라파이트, 잠깐. 잠깐... 가지마. 응? 가지마. 이번에는 같이 있자."

"마법은 영원하지 못하지."

"아니야, 아니야. 이번엔 함께 할거야."

 

그라파이트는 미안하다는 듯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표정 짓지마. 다급하게 그라파이트를 안으려 했지만, 자정인 듯,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까와 같은 당황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시린 어둠에 바람이 휭하고 불자 그제서야 정신 차린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숨바꼭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거, 알잖아. 폐건물을 샅샅히 뒤지고서야 진짜 사라졌다고 인정했다. 바들거리는 손으로 그라파이트가 덮어준 옷자락을 쥐었다. 안아줄걸. 보고싶었다고 이야기 할 걸. 왜이리 늦었냐고, 투정부리지 말걸.

 

언제나 후회는 뒤늦게 밀려오는 법이다. 한참을 폐건물을 벗어나지 못 했다. 혹시나 추위에 떨고 있으면 다시 와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바램. 하지만 야속하게도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천천히 해가 뜨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자 포기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케이크 모형을 두었던 계단으로 가보았다. 뭐라도 남겨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있다...!"

 

케이크 모형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쪽지가 눈에 확 들었다. 뛰어가듯 확 잡아채어 내용을 읽었다.

 

'다음엔 같이 먹자.'

 

짧은 문장이 적힌 쪽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하다는 듯 쪽지를 가슴에 묻었다. 응, 다음엔 같이 먹자. 그땐 길 잃지 말고.

 

잔잔한 태양 빛이 할로윈의 기적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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