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hero
“바다다!”
눈에서 광선을 뿜으며 당장에라도 뛰쳐나가려는 타카하루의 목덜미를 턱, 야쿠모가 낚아채 제지했다.
그 정면에서 팔짱을 끼고 인왕처럼 서 살벌한 눈빛을 보내는 후우카가 안중에 없는 모양.
“타카쨩, 그 말만 벌써 10번 넘게 했어.”
모처럼 다 같이 모여서 바다에 가는 거잖아!
들떠 집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그를 웃으며 지켜보던 것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붙들고 어르고 달랬다. 실랑이 끝에 상체를 세상천하 공개하고 붉은 팬츠 수영복만을 입고 뛰쳐나가려던 그에게 얇은 와이셔츠와 바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그랬더니 지금의 타카하루는 어떤가. 이 훤한 대낮에, 탈의실도 거치지 않고 백사장 한가운데서 옷을 벗어던질 의사가 충만하지 않은가.
야쿠모와 나기만이라면 한숨 쉬고 웃어주겠지만, 후우카와 카스미 두 여성진은 절대 용서할 의사가 없는 듯.
“타카하루 군. 기본 매너를 준수하지 않으면 바다에 발도 못 담글 줄 아세요.”
카스미가 웃으며 말한다. 웃고야 있다만. 그것이 깊게 눌러쓴 챙모자에 의한 그림자 때문인지 아닌지. 눈동자가 서늘했다.
“하하하.”
타카하루가 겨우 후우카와 카스미의 살기 섞인 눈빛을 깨닫고 움찔한다.
“타카쨩, 탈의실은 저쪽.”
빠르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오는 나기의 말에 맞춰 야쿠모가 목덜미를 잡은 손에서 힘을 뺀다. 그대로 슝, 타카하루가 짐을 잔뜩 안은 채 탈의실을 향해 달려간다.
“바다 한번 오는 것도 참 not easy 하네.”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다 같이 바다에 오겠어.”
슬슬 여름도 끝이고.
엄한 표정을 지었던 주제에, 후우카가 슬핏 웃어 보인다.
“타카쨩이 가자고 안 했으면 이렇게 모여서 놀러 오기가 쉽진 않았지.”
“행동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귀찮다 바쁘다 멀다 했지만 그래도 가자고 말하며 웃는 그 얼굴에 졌다. 때문에 야쿠모, 나기, 후우카, 카스미는 지금 이 곳에 함께 모였다.
“앗!”
소리를 높인 후우카가 거의 탈의실에 도달한 타카하루의 뒤를 따라 달린다.
“오빠, 우리 짐까지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해!!”
여성 탈의실은 반대편이다.
***
“이게 뭐람.”
후우카의 한숨이 동굴에 반사되어 웅웅 작은 울음을 토했다.
맨살과 새하얀 수영복이 시아에 잡혔다. 수영하던 중 적에게 납치되었다. 무기를 숨길 장소도 없고, 시로닌자로 변신할 수도 없다.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에 카스미가 슬쩍 몸을 틀어 등을 보인다. 곤란한 듯 눈을 찡그리는 이유를 깨닫고는 앗차, 고개를 꾸벅이는 것으로 미안함을 전한다. 인질이 많았다. 후우카의 불안 한마디가, 짜증 한마디가 불러올 파장이 거대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전원 여성. 가족들과 헤어져 패닉에 빠진 이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아, 무기가 있다고 한들 상황이 달라지진 못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짜증을 억누른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도움이 올 거예요.”
의지를 담아 일부러 크게 내뱉는다.
즐거운 물놀이가 순식간에 납치극이 되었다. 젖은 수영복에 들러붙은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질수록, 마른 피부가 추위에 질려갈수록
사람들의 공포는 커져간다. 불안함에 눈물을 보이고, 이를 악물고 있던 여러 시선이 카스미를 향해 집중됐다. 거짓이 아니라는 그 눈동자에 조금 안도하는 이도, 의심하는 이도, 절망에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다.
귀여운 붉은색 투피스 수영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훌쩍이며 다가온다. 해변에서 아빠와 함께 바다를 찾았다고, 즐겁게 자랑하던 아이다.
“정말, 구하러 와요?”
“응!”
한층 더 밝게, 진심을 담아 대답한다.
“바보 오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도우러 올 테니까!”
확신에 가득 찬 후우카의 눈이 반짝인다. 두말도 필요 없다는 대답에 아이가 살짝 미소 지었다.
잘게 떨리는 손끝을 등 뒤로 숨기며, 믿는다. 이 떨림은 체온이 떨어져 그런 것이라 자신을 속인다. 할 수 있는 것은 굴복하지 않는 것.
‘그러니 빨리 구하러 와, 오빠!’
***
“늦었잖아!”
인질은 무사히 해방되어, 저마다 일행의 손을 붙잡고 떠나갔다. 뒤처리를 끝냈을 때쯤은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모처럼 바다를 찾았지만 정작 추억이랄 게 얼마 없다.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강한 척, 어째서 이리 늦었냐 소리를 높이면 대꾸도 없이 성큼 다가와 그림자를 드리운 타카하루가 자신이 걸치고 있던 와이셔츠를 걸쳐줬다.
“이게 뭐야. 눅눅하고 미적지근하고.”
바닷물에 젖은 채 체온으로 데워진 옷은 솔직히 불쾌했다. 해수욕 후에는 체온이 떨어질 것이라며 준비성이 좋은 후우카는 자신의 외투를 챙겨왔다. 짐이라면 저기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으니 후우카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게 해주면 될 것을.
젖어 축 늘어진 붉은 옷깃을 잡은 채 불평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것은 타카하루의 얼굴에 어린 그림자 때문이다.
이가사키 타카하루, 밝고 밝은 그녀의 오빠가 붉은 노을을 등지고 새파랗게 질려 후우카를 바라보고 있다.
후우카 일행이 납치된 장소를 찾기 위해 한계까지 잠수했다고 하던가. 슬쩍 닿은 손끝이 너무나 차가워서, 후우카 자신보다 타카하루에게 옷이 필요해 보였다.
“정말 바보라니까.”
그렇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까, 걱정하는 걸 숨기지 않으니까. 후우카가 더 독한 소리를 하는 거라는 걸 타카하루가 알게 될 날이 오기나 할까.
바보.
조그맣게 입안에 속삭인다.
한결같은 사람은 강하지만 위태롭다. 위태로우니까 곁에서 함께 걸어 나가고 싶다. 언젠가 그와 대등한 존재가 되어서.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 그러니 지금의 후우카는 지금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
“돌아가자 오빠. 감기 걸리겠어.”
써늘한 손끝을 잡고 앞서 걸으면 작은 한숨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대답.
“그래.”
그녀의 영웅은 웃는 얼굴이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