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인종 소리가 났다.
한 손에는 책, 다른 손에는 마커를 들고 검색할 거리를 고민하던 필립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곳은 나루미 소우키치가 운영하던 탐정 사무소였지만, 필립이 여기 살게 되고 나서부터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당분간은 네가 노출될 만한 일을 최대한 피할 거야.'
히다리 쇼타로는 그렇게 말하며 사무소 간판 옆에 [당분간 쉽니다.]라고 큼지막하게 쓴 종이를 붙였었다. 그 당분간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아직까지 그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 보면 금방 영업을 재개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한가로운 주말 아침부터 사무소 초인종이 울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필립은 차고 문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네, 나갑니다. 히다리 쇼타로의 조금 졸린 듯한 목소리와 함께 작은 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방문객이 인사를 꺼내기를 기다리던 필립은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고개를 갸웃했다.
Trick or treat!
적어도 대여섯 명은 되는 것 같은 어린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친 말은 어느 나라의 인사말도 아니었다. 그냥 장난인가? 필립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쇼타로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냈다.
아아, 벌써 할로윈이었나.
우와,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날짜 감각 이상한가 봐.
이 녀석아, 할 일 많은 어른은 사소한 행사 정도야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야.
우리 아빠가 그런 변명 하는 사람이 제일 비겁한 거랬어요!
깔깔대는 웃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멋쩍은지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헛기침만 하던 쇼타로는 앗,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사탕이 있었던가.
저희는 과자도 괜찮아요!
양갱이나 초콜릿도!
알았다, 알았어. 잠깐 기다려 봐.
사무소 안쪽으로 들어갔는지 쇼타로의 목소리가 잠시 희미해졌다. 달그락대는 소리를 보아하니 찬장을 뒤지는 모양이었다.
찾았다. 너희 캐러멜 좋아하냐?
당연하죠!
아이들이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쇼타로는 키득거리며 캐러멜을 조금씩 나눠주었다.
됐지? 재미있게 놀아라.
네!
입 모아 대답한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문이 닫혔다. 아까 전과 달라진 것도 없는데 사무소 안이 유난히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혹시 누군가 돌아올까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필립은 차고 문을 열었다.
"쇼타로."
"어, 필립?"
아침부터 커피를 내렸는지 짙은 향이 났다. 쇼타로는 조금 식은 잔을 막 들던 참이었다. 필립을 돌아보는 얼굴에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웬일이냐, 거기서 잘 나오지도 않더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서. 쇼타로, 할로윈이라는 게 뭐지?"
"할로윈? 들어 본 적 없어?"
쇼타로는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원래는 기독교 쪽에서 성인을 기리는 날이었다는데, 그게 축제로 바뀌어서 넘어온 거야. 지금이야 그냥 분장하고 노는 날이지. 사탕도 얻어먹고."
"유령 분장?"
"그래. 방금 왔던 애들도 식탁보 하나씩 뒤집어쓰고 있었거든."
"흐으음. 흥미로운걸."
필립이 손을 입 가까이 가져갔다. 쇼타로는 움찔했다. 저 미묘한 웃음과 제스처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탓이었다. 필립은 자기 머릿속에 담겨 있다는 지구의 책장-쇼타로는 아직 그 원리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을 통해 흥미 있는 주제에 대해 검색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는데, 그 스케일이 가히 상상을 넘어설 정도였다. 꼭 저런 표정으로 차고에 틀어박혀 몇 시간을 꼬박 혼자 중얼거리는 건 예사로, 그 흥미가 안 좋은 곳을 향하면 끔찍한 사단을 내고 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벌인 일이 뭐였더라. 집안의 밀가루라는 밀가루는 전부 부침개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며칠 동안 끼니마다 부침개로 때웠던 거였나.
"너 말이다…. 흥미 있다느니 어쨌다느니 혼자 그러는 건 상관없는데, 또 괴상한 짓만 하지 마라. 알았어?"
스멀스멀 밀려드는 불안함에 신신당부했지만, 이미 다른 얘기는 들리지도 않는지 필립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차고 안에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쇼타로는 한숨을 쉬고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정말이지, 귀찮은 녀석이었다.
============================================
"그렇게 생각해 놓고 나온 내가 미친놈이지."
쇼타로는 중얼거리며 바이크를 더 가속했다. 읽을 책이 다 떨어졌기에 잠시만 서점에 들를 생각이었으나,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하드보일드 소설이든 교양서든, 쇼타로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나름 까다로운 편이었다. 예전에야 서점에서 몇 시간을 보내든 상관없는 한가로운 처지였기에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냥 내버려 뒀다간 집안을 어떻게 만들어 버릴지 모를 시한폭탄을 몇 시간이나 혼자 내버려 두는 짓을 하고 만 것이다.
도착은 금방이었다. 바이크를 한쪽에 세운 쇼타로는 급히 계단을 뛰어올라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입을 떡 벌렸다.
"뭐, 뭐야, 이건!"
사무소 안이 주황색과 검은색으로 온통 얼룩덜룩했다. 크고 작은 잭 오 랜턴, 마녀 마스코트가 천장에 수도 없이 매달려 있는 건 덤이었다. 그 한가운데에서는 탁자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필립이 제일 큰 잭 오 랜턴을 달고 있었다. 쇼타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필립의 눈이 쇼타로의 쪽을 향했다.
"앗, 쇼타로!"
필립이 천진하게 웃으며 탁자에서 뛰어내렸다. 방금 매달린 랜턴이 대롱대롱 흔들리는 것을 아연하게 보던 쇼타로는 한 손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거칠게 헤집었다.
"아, 진짜! 필립! 이게 다 뭐야!"
"후후후, 넌 몰랐구나? 할로윈 파티라는 문화를! 할로윈을 즐기는 집에서는 집과 문간에 할로윈 마스코트를 매달고…."
"그딴 거 알까 보냐! 대체 저런 건 어디서 난 거야!"
"창고에서 찾았지. 혹시 너도 있는지 몰랐던 거야?"
"창고?"
눈을 찡그리던 쇼타로는 금방 기억을 떠올려 냈다. 그러고 보니 산타가 잊을 만하면 주고 가던 장난감들에 저런 게 있었던 것도 같았다. 선물로 받은 걸 버리긴 또 뭣해서 적당한 데 몰아뒀던 것들이 이렇게 꺼내질 줄이야.
"…저걸 다 발굴해낸 너란 녀석도 대단하다."
쇼타로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필립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이 사무소에 대해서도 다 검색해 뒀으니까."
"칭찬 아냐, 이 녀석아."
투덜대며 모자를 벗어 못에 걸어 두었다. 그래도 처리하기 힘든 사고를 친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필립이 밖에 나갔다 왔다든지-쇼타로가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한 것도 아니고, 저 인형들이야 나중에 다 떼버리면 그만이니.
"저기, 쇼타로."
"왜, 또."
그래도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그대로 튀어나갔다.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에 뒤를 돌아봤더니 눈앞에 손바닥이 불쑥 내밀어졌다.
"Trick or treat."
"하?"
"사탕. 안 주면 장난 칠 거야."
"아니. 네가 말하면 그거 진짜 협박이거든."
쇼타로는 질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필립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한 번 들썩했다. 손은 그대로 눈앞에 있었다.
"사탕."
"알았어, 알았다고."
쇼타로는 조끼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필립이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숙였다. 그 입에 주황색 젤리 사탕이 하나 물려졌다. 얼떨결에 입술을 양옆으로 길게 늘리게 된 필립이 눈가를 찌푸리며 막대를 잡아 뺐다. 설탕이 잔뜩 묻은 호박 모양 사탕이었다.
"어디서 난 거야?"
"서점."
할로윈 이벤트라며 책을 산 고객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것을 들고 온 것이었다. 필립은 조금 끈적해진 호박 꼭지 부분을 빤히 보다 다시 입에 물었다.
"다네?"
"당연하지, 사탕인데."
"전에 먹어 봤던 거랑 달라."
"종류가 다르니까. 먹기 거북해?"
"아니, 맛있어."
필립이 끝부분을 살짝 깨물고는 웃었다. 그게 또 영락없는 소년의 모습이라, 쇼타로는 입꼬리를 당기며 필립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래. 좀 괴상한 짓을 많이 하긴 해도, 아직 이런 걸 좋아하는 어린애 아닌가. 어른이 되기로 다짐한 이상 이 정도야 맞춰 줘야겠지.
"악, 쇼타로!"
"뭐, 왜?"
좀 더 제대로 준비해 줄 걸 그랬나. 뭐, 이런 걸 할 기회가 앞으로 없는 건 아니니까. 자신의 손 아래서 빠져나오려 애쓰는 필립을 놀리며, 히다리 쇼타로는 생각했다.


필립
이슬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