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타케루, 여기가 바로 강당이고 저쪽으로 돌아가면 자연대 학생식당이 나오고 거기서 더 가면..."
"아카리~ 아직 대학 붙지도 않았는데 뭐하는 거야."
타케루가 웃으며 아카리의 손에서 잡힌 팔을 가볍게 빼냈다.
"하지만 열심히 할 거잖아? 붙을 거잖아?"
아카리는 환하게 웃으며 타케루의 팔을 다시금 붙잡고 이끌었다. "여기서 더 가면 이곳은 화학실험실이고, 이 뒤쪽은..."
"아카리~ 아까부터 자꾸 이과쪽 건물만 보여주는데 나 문과거든? 원서도 역사학과로 넣을건데 여긴 반대쪽 아냐? 그리고 나 아직 시험도 한참 남았다고!"
이제 슬슬 겨울이 되가는 스산한 10월 마지막 날의 오후.
타케루는 아카리의 손에 이끌려 교정 이쪽 저쪽으로 끌려다니고 있었다.
중간고사 끝났다며 오전부터 대천공사에 놀러와 굴러다니는 아카리에게 "아카리, 나 아카리 다니는 대학에 원서 넣을까봐-" 라는 말을 한 것이 실수였다.
그 말에 더운 여름날의 엿 마냥 추욱 늘어져 있던 아카리가 배터리 게이지 100퍼센트의 아카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카리는 타케루를 붙잡고 어떤 과를 쓸 것인지, 시험 날은 언제인지, 그리고 성적이 얼마나 부족한지... 등등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전의를 불태우려면 대학 건물 구경이 최고라며 끌고 나온 거였다.
"그리고 이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2층에는 테이크 아웃 카페가 있고 그리고 오른쪽 복도에는 우리 동방이 있지."
아카리는 그대로 타케루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때? 멋지지? 이게 바로 대학교 동아리의 힘이다! 이 번쩍번쩍 빛나는 실험도구들을 보라구!"
아카리는 기운차게 실험도구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설명을 타케루에게 늘어놓았다. 타케루가 듣건 안 듣건 이미 아카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타케루는 어색하게 웃더니 근처에 있는 의자를 빼 앉았다.
아카리가 저러는 건 익숙했다. 아마 한시간 가량 내버려두면 듣고있냐며 그제서야 타케루를 찾을 게 분명했다.
타케루는 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 앉으며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를 바라보았다.
똑딱, 똑딱...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초침을 눈으로 따라가다 타케루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타케루 님, 타케루 님~"
"음.. 음? 오나리?!"
살그머니 뜬 눈에 비쳐들어온 것은 호박 분장을 한 오나리였다.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코토가 보였다.
마코토는 아무런 분장도 하지 않은 채, 원래의 복장을 하고선 불만스럽게 앉아있었다.
얼굴 가득 검은 펜으로 그려진 주름과 수염, 주근깨 등이 마코토가 불만스러운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마코토의 옆에서 그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는 카논과 아란의 손에 검정 펜이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누가 한 짓인지, 왜 마코토가 거부하지 못 했는지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카논은 아마존 여전사로, 아란은 타코야끼로 변장을 하고 있었다.
"아카리는...? 아카리는?"
고개를 휘저으며 타케루는 아카리를 찾았다. 그런 타케루를 오나리가 이끌며 "타케루 님! 타케루 님도 어서 분장을 하셔야죠!"라고 시끄럽게 외쳤다.
"나도? 나는 아무것도 준비 안 했는데?"
"아무것도 준비 안 했으면 이렇게 그리면 돼!" 카논이 까르르 웃으며 펜을 높이 들어올렸다.
"아니아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괜찮아, 카논-."
타케루는 카논을 피해 도망을 치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마코토 형처럼 되지 않고 뭔가로 변장을 할 만한게 무엇이 있을까... 잠시만 왜 내가 갑자기 이걸 고민하고 있어야지?
'꿈인가?'
타케루는 슬그머니 자기 자신을 꼬집어보았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싱긋 웃으며 타케루는 고스트 벨트와 오레 아이콘을 꺼냈다.
"할로윈은 '고스트'로 변장하는 날이니까, 나는 그럼 가면라이더 '고스트'로 변신해도 얼추 맞는 거지?" 그리곤 허리에 찬 벨트에 아이콘을 집어넣었다.
지금까지 중 최고로 경쾌하고 즐겁게.
"변신!"
변신한 타케루에게 그건 반칙이라며 카논에게서 펜을 뺐어들고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마코토를 피해 뒤로 휙 피했다.
"저 녀석 잡아!" 마코토가 외치자 다들 우르르 일어나 호박씨를 움켜쥐고 타케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왜 하필 호박씨야?" 타케루는 웃으면서 하나하나 피했다.
박쥐인간으로 변신한 것 같은 시부야, 나리타는.... "잠깐, 오나리? 나리타 지금 오나리로 변장한거야?" 타케루는 깔깔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삼각플라스크로 변장한 아카리가 버티고 서있었다.
아카리의 놀라운 모습에 타케루는 정신없이 호박씨를 피하던 몸을 잠시 멈췄다. "아카리?"
아카리는 그런 타케루를 바라보다 씨익 웃으며 주머니에서 역시나 호박씨를 꺼냈다.
"일동 사격 실시!"
어느새 자신을 둘러싸고 섰는지, 다들 타케루를 향해서 호박씨를 던졌다.
"아니, 잠시만! 알았어! 제대로 할게! 아파! 아프다고~ 하하하-."
"타케루? 타케루!"
"아파, 아프다고. 잠깐 잠시만. 응?"
타케루는 고개를 저으며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앞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카리가 있었다.
매우 심기불편한 상태의 아카리가 입을 여는 순간 타케루는 밝게 웃으며 앞으로 한발 나아가 아카리의 두 손을 붙잡았다.
"아카리! 좋은 생각이 났어!"
"타케루, 너 내 말 하나도 안 듣고.. 잠시만 좋은 생각? 응?"
타케루는 그대로 아카리의 손을 잡아 끌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오늘 밤에 우리 모여서 할로윈 파티를 하는거야! 부를 수 있으면 있는대로 다 부르자~!"
밖에는 이미 해가 져있었다.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어디선가 일곱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얼마전에 오나리가 가져온 커다란 호박 속을 파내고 등을 만드는 거야. 그리고 호박씨는 던지고 놀자!"
"자..잠깐 호박씨를 던져? 왜?"
어리둥절해하는 아카리의 말은 뒤로 하고 타케루는 대천공사를 향해 달렸다. 수험 공부 전의 마지막 휴일로 생각하기로 하면서...

텐쿠지 타케루
Rennie

